춘추시대 공자는 혼란스런 나라 상황을 걱정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내놓는다. 그 해법을 한자
어로 하면 君君臣臣父父子子이다. 한국말로 풀면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
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살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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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한마디 개념어로 압축하면 정명(正名)이라고 말한다. 한국말로 풀면 ’이름을 바르게‘인데
약간 느낌이 잘 안온다. 내가 생각한 좀 더 적합한 번역은 ’답게‘ 혹은 ’답다‘가 아닐까 싶다.
이를 하나의 논리로 치면 ’역할론‘이다. 이 후 중국 중심의 동양사상은 유교의 역할론이 주류
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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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우리 세상이 춘추의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다. 뭔가 풍성한데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각자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는 느낌이랄까. 혹은 누군가
에게 자신의 역할을 떠맡기고 강요하는 느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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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핫이슈였던 네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재밌게 봤다.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막상
볼때는 별 생각을 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교육의 ‘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공자의 정명까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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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군’을 우리 시대로 풀면 사장님이나 선생님을 떠올리면 된다. ‘신신’은 직원이나 학생을 떠
올리면 되고. ‘부부자자’는 말 그대로 부모와 자식이다. <참교육>에 등장하는 빌런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다. 학생은 학생답지 않고, 선생과 부모 모두 자신의 다움을 모
르고 있는 상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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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교권국이라는 강력한 권력이 등장해 해결하는데, 이 또한 춘추 시대 상앙 사상의 해법과
유사하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니 강력한 힘이 이를 통제하고, 후일 한비자가 이를 강
력한 법치를 강조하며 제도로 해결하려하는 모습과 너무 유사하다. 결국 인간 세상을 다 비슷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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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 시대 선생다움은 뭘까? 선생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 수학이 문제에
답이 있듯, 난 이런 곤란한 질문에 처하면 말 그 자체를 다시 주목한다. 先生(선생), 한자어로
먼저 살아간 사람이다. 먼저 살았다는 것은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이며, 과거의 시행착오를
기반해 학생(배우는 사람)에게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지 알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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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시대 문제는 과거가 미래에 별로 소용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400년전 데카르트
가 <방법서설>의 서문에서 난 선생님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에서 다시 공부하겠다
고 했듯이 우리는 더 이상 과거보다는 현재 그 자체에서 미래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
가 지금은 오히려 세상 변화 속도가 데카르트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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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우리 시대 선생은 과거를 가르치기 보다는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리더의 역할이어
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식을 알려주기 보다는 지식을 함께 탐구하는 역할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답을 맞추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나도 미래에 대한 답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역
할이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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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살았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신경망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기억’ 덩어리라고 해도 무
방하다. 그렇기에 선생은 이미 먼저 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 자격을
자꾸 증명서에 의지하고 기관에 안주하니 미래를 지향하는 선생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는 후
생이 되는 상황, 즉 선생이 선생답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학생도 학생답지 않고, 부모도 부
모답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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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교육>의 해법은 우리시대 선생다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선생인가?’가 아니라 ‘어떤 선생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몽둥이를 들고 답을 강요
하는 선생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과거의 시행착오를 고백하며 함께 답을 찾는 학생 같은
선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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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선생다워지기 위해 평생을 학생답게 살았다. 우리 조상 제사상에
이런 문구가 있다. ‘학생부군신위’ 선비들은 죽어서도 자신을 선생이 아닌 학생이라 여겼다.
항상 학생의 정체성으로 선생의 삶을 살았다. 어쩌면 선생다움의 바탕에는 학생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의 정명, 역할론은 그리 간단한 사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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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 이렇게 ‘입시+대학’에 목을 맬까, 아니면 새로운
전환을 모색할까. 느낌은 더더욱 비대해지고, 생각은 자꾸자꾸 빈약해지는 디자인 교육은 또
어떻게 될까. 아무튼 디자인 교육자로서 삶을 결정한 뒤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나라도 선생
다워지기 위해 노력하자. 선생다움과 학생다움을 향해. 디학 화이팅!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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